지난 02월 중순 경이었다. 말끔해진 모습으로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는 인사를 불쑥 건넸다.

"누구..."

"저 황경진 입니다."

반가움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3년전 말레이시아 출장을 처음 갔을때 현지에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신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 이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즈음에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으로 취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인연이 되는 사람이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던 차였다.

"이야~~ 취업되셨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금은 KK(Kota Kinabalu)에서 법인 관리를 맡고 있어요."

겸손하고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황경진씨의 장점이다. 마침 취업에 대한 사례가 없던 차라 잠깐 사무실에 온 김에 여러가지를 물어 보아야 겠다 생각을 하고 펜과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근데, 주위에도 한국인 유학생들이 취업된 사례가 있나요?"

"그럼요. 모두 기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웅진코웨이 말레이시아 지사에 취업된 한분이 계시고, 상명대 무용과에서 Sunway를 거쳐 삼성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1년 근무이후 Posco에 들어가신분도 계시죠. 아마 그분은 동아 Holdings라고 현재 월 RM 10,000의 월급에 집과 교통비를 지원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재 말레이시아 직원들이 월 RM 1,800~2,000을 받는 다면 외국인으로서 한국인들은 RM 3,800 ~ 5,000을 받는 것이 평균적인데 저 정도면 매우 성공한 사례죠."

의외로 적극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해 주신다. 현지 졸업생 중에도 말레이시아의 한국 지사에 근무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서 놀랍기만 하다. 말레이시아 현지의 한국인 학생들의 일반적인 상황이 궁금해 졌다.

"말레이시아 현지에는 외국계 기업도 있고, 현지 기업도 있을 텐데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외국계 기업은 급료가 조금 낮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월 RM 3,000 ~ 4,000 수준인데, 이정도를 받으면 Shell, HP, IBM 등의 회사에서 경력을 쌓을수 있죠. 하지만, 단순 사무 업무를 보거나 한국 시장 조사의 측면이라 발전가능성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월급은 5~6년 차까지 가면 RM 5,000 까지 받는 것 같아요."

"근데 취업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요. 졸업생들이 없거든요. 대부분 호주나 영국으로 많이들 가니까요."

호~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듯 하다. 매일 듣고 조사하는 것이 유학쪽이라 취업 부분은 전무 했는데 이 기회를 잘 이용해 보아야 겠다.

"다른 유학생 분들 중에 해외 대학으로 간 사례 알고 계세요?"

"몇몇 사례는 알죠. 현지에서 Kang이라고 불렸던 저와 친한 분이 계신데, Taylor's에서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로 가셨어요. 그리고 저희 학교에서는 Animation 전공으로 RMIT를 가신분도 계시구요."

역시 현지 유학생의 정보는 다르다. 초기 중의 초기 대학 유학생이니 학교에 대한 것도 물어 봐야지.

"현지에서 공부 하시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학교와 교과 과정에 대해서 말씀 좀 해 주세요. RMIT 가신 분은 LUCT의 RMIT 연계 Diploma 과정인 Advanced Diploma of Multimedia과정을 하셨나요?"

** 불꽃 : Advanced Diploma of Multimedia 과정은 RMIT가 직접 설계한 과정으로서 3년으로 구성, 해당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RMIT의 3학년으로 편입이 보장되며, 호주에서는 1년만 더 공부하면 RMIT의 학위를 받을 수가 있다. Diploma이지만 RMIT(세계 200위)라는 세계 명문대학이 협정을 맺은 만큼, 3+0 학위 트위닝 프로그램 만큼이나 뛰어난 과정이며, 해당 과정 이수 후, Creative Multimedia, Animation, Digital Communication & Design, Digital Intergrated & Immersive Multimedia, Digital Imaging & Illustration으로 학위 진학이 가능하다.

"네 맞아요. RMIT와 연계된 Advanced Diploma 과정은 LUCT(Limkokwing University of Creative Technology)가 가진 과정 중에서도 제일 어렵다고 평판이 나 있어요. 이 과정은 제때 마치기도 어렵다고 들었구요. 해당 과정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Curtin과 RMIT는 이 과정을 100% 학점으로 인정해 주죠. 과제는 수도 없이 많구요."

** 불꽃 : 실제로 RMIT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공식적으로 LUCT의 Advanced Diploma 과정을 편입 허가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교수진은 어떤가요?"

"모두 다른것 같아요. Diploma나 Foundation은 LUCT 출신의 졸업생을 많이 채용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Degree나 Advanced Diploma는 호주 미국 등의 학교를 이수하신 분들이고 경력도 있구요. 학년이 높아지면 강사들도 실력이 좋아지며 월급도 RM 10,000 ~ 20,000 까지 받더라구요. 기초를 가르치시는 강사들이 RM 3,000 정도이니 차이가 크죠."

"처음에 들어가면 모르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이 치열 해져요. 총 8학기가 있다고 보면 4,5학기가 큰 고비죠. 주말에도 시간이 없을 정도니까요. 특히 6,7,8학기는 만들기 + 발표로 이루어져 있어요. 디자인 실습을 아무리 잘 한들 팔아먹지 못하면 한되니까요."

"7,8 학기에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하는데, 이때에는 마케팅인지 디자인인지 모를정도로 발표와 그룹수업을 하죠. 마지막 1년 반은 정말 무엇을 할 수가 없어요. 교회다니시는 분들도 오전에 시간 빼는것을 너무 힘들어 할 정도니까요."

일전에 어떤 분께서 하루 3시간 잠을 잤다고 하셔서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경진씨도 Curtin 3+0 트위닝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 했는데 어떻게 공부 했는지 물어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학위 과정에서 잘 할 수 있나요?"

"저의 입장에서는 잘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통과만 하면 다행이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ELS에서 6단계만 끝내고, LUCT로 편입을 해서 4학기 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처음에는 말레이시아 영어를 우습게 생각했는데 대학 과정에 들어가니 알아 듣지를 못하겠더군요. 어느과목은 반 이상, 어느과목은 이해가 아예 되지도 않았어요. 특히 서양미술사는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를 구입했죠. 칠판의 필기는 아예 찍고, 강의 내용은 모두 녹화했어요. Taylor's의 과외 선생님을 구해서 수업을 보충해야 할 만큼 혼자 할 수 없었거든요. 찍어온 영상을 선생님이 다시 설명하면 과제를 하고, 다시 과제를 점검하는 식으로 수업을 했어요. 이것을 1년 정도 하니까 수업의 70% 이상이 이해가 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라구요."

"이후 부터는 의지의 문제였어요. 마지막 1년을 기점으로 나누어 보면 7학기 이전에는 실기의 비율이 90%라서 특정 제품이나 디자인 하나를 만들어서 내면 되는데, 7학기와 8학기에는 실기와 이론의 비율이 각각 50%로 나누어져요. 실기 하나를 해 오면 이 디자인을 가지고 교수와 학생 앞에서 30분동안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때 영어 능력이 절실히 필요해요."

"잘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을 팔아야하고, 파는 과정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글쓰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상대방이 흥미가 있어야 디자인을 사게 되니까요."

역시... 영어는 처음에 할때 부터 천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긴 시간을 잡고 하는 것이 맞나 보다.

"어떤 학생들은 이때 영어 능력이 부족해서 7학기 이후에 학교에서 개설하는 Business English 과정을 별도로 수강 한 다음 다시 복학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과제 말고도 이런 수업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라지는 학생들도 있어요. 적응 못하면 대부분 Sunway로 가더라구요."

흠... 여기서도 Sunway가 등장하는군... 

"들어보니 디자인 과정이 정말 어려운것 같은데, 참 고생하셨네요."

"맞아요. 디자인은 할거 없어서 가는 과정이 아니예요. 할거 없어서 가는 학생들의 경우 길어야 1년 반 있다가 사라져요. 자신이 정말 좋아서 희생해 봐야겠다고 생각이 되면 디자인을 전공하라고 조언하세요. 마케팅이나 경영학과 보다 실패 학률이 높은 과정이 디자인이니까요."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이 돋보인다. 이제 졸업식에 대해 물어 봐야지.

"졸업 작품전이나 졸업식은 어땟나요? 뭔가 다를것 같은데 말이죠."

"그때 제가 한 것은 졸업전 마지막 과제로서 전시회에 참가 한 것이었던것 같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레이시아 산업 디자인 협회에 출품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중간 고사 과제는 말레이시아 산업 진흥회, 기말고사 과제는 말레이시아 식품 연합회에 출품 했던것 같은데, 교수들이 하나씩 브랜드를 주면 학생들이 만들게 되어 있어요. 물론 채택되면 혜택과 상금이 주어지기는 하는데 아직까지는 학생 작품의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많이 없어요. 학생 중에 한명이 현대 처럼 말레이시아 차 디자인을 했는데, 이것이 뽑혀서 차 한대 받고 말았을 만큼이요. 어쨋든 졸업식날은 전시회를 하게 되구요."

"졸업 하실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한국은 취업 걱정에 많이들 답답해 하고 공무원 공부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냥 짐을 벗은것 같았어요. 30이 다 되어 가는데 그래도 비젼이 많이 보여서 답답 하지만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있었는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학과 과정이 어려워서 졸업생이 많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참. 저는 Curtin 3+0 과정을 했기 때문에 Curtin 대학의 디자인 학과장님이 학위를 수여해 주셨죠."

햐~ 정말 대단하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학과 과정이 놀랍기 그지 없다. 이제는 말레이시아 유학을 가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인 성적표에 말레이시아 대학이 표기 되는 것에 대해 물어 봐야지.

"근래 상담을 해 보면 어학을 말레이시아에서 한다는 것이나, 교육 시스템상 3+0 이든 1+2이든 성적표 상에 말레이시아가 표시되는 것을 민감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말레이시아라는 표시가 되어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어학은 어디를 가시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다 똑같은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물론 영미권의 환경이 좋기는 하겠지만, 말레이시아인들이 한국인에게 귀를 귀울여 준다는 환경적인 측면으로는 더욱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취업의 측면에서도 Kotra나 대사관에서 Parttime으로 일을 한다면 취업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로 가버리면 불가능하죠."

흠... 그렇다면 유학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제가 생각하는 유학은 더 심화해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과(MBA, Master, 해외 학위 등등) 지금 나의 현실을 탈피해 보자는 부분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이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100% 200% 가능하죠. 하지만, 이것이 아닌 사람들은 더 큰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오면 안되죠."

좋은 말씀이다. 정말 유학생 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해외 취업에 대해서도 물어 봐야지.

"해외 취업을 하시면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일단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크게는 현지 기업에 취업해서 현지인의 대우를 받는 방법과, 파견, 주재원 자격으로 한국의 대우를 받는 방법이 있어요. 대부분 후자를 선호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은 이미 특정 업무에 있어서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요."

"저의 경우에도 급여는 한국에서 나오고, 파견 주재원 대우를 받고 있어요. 본사에서 과장급 이상이 오시는데 나이는 제가 제일 어리죠.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저를 주축으로 회사가 돌아가며, 차장, 과장급도 계시지만 내가 아는 곳임으로 더 많은 기회가 되는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바쁘시겠네요. 회사에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앞으로 KK(코타 키나발루) 지역에 석유 화학 공장에 대한 공사를 하고 있고, 2차가 예정 중이예요. 올해 06월에는 현대 엔지니어링에서 열병합 발전소 관련해서 2년 6개월 정도의 계획이 예정되구요. 근래 한국 기업들의 말레이시아 진출이 활발한데, 저의 계획은 한 2년 현장에서 근무 하다가 본사로 들어가는 것이예요."

"그런 과정들이 쉽지는 않을텐데 말레이시아에서 취업을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은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어야죠. 한국 대학을 나와도 회사의 사장에게 신뢰를 주어야 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취업하려면 말레이시아의 졸업장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한국내에 있는 본사의 직원보다 더 큰 신뢰를 받으려면 기본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Kotra, 무역센터, 대사관에서 활동하면 한국 기업들이 뽑고 싶어하죠."

"한국 기업들의 말레이시아 진출은 높아져 가는데 일을 하고 싶다면 준비해야 고를수 있어요. 현지 교민이 2~3만명 이라도 졸업자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적으니 앞으로도 길은 분명 있구요. 다만, 취업의 길이 많은것은 아니예요. 지금 말레이시아에는 제가 학교를 졸업했던 때보다 몇 십배 많은 학생들이 있어요. 예전보다 취업의 길은 줄어 들고, 취업 시장이 한국보다 좋지는 않죠. 하지만, 싱가폴에서도 취업이 가능하고, 인구가 적어서 인적자원이 반드시 필요해요."

"급여가 많지는 않아도 취업의 기회는 분명 존재해요. 본인이 원하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할 수 있어요. 말레이시아는 준비를 하면 되요. 집, 차, 취업, 승진도 자신이 노력한다면 할 수 있는 곳이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거든요."

휴~~ 대단한 식견이다. 하긴 앞으로 말레이시아에 한국 기업이 진출할 것임을 알고 말레이시아 대학을 들어간 사람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일수도 있겠지.

여기까지 무려 2시간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받아 적느라 한참 힘들었는데, 마침 본사에서 전화가 와서 가봐야 한단다.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인연이니 오늘 못다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다시 할 수 있겠지. 연락을 받고 나가는 경진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배웅해 드렸다.

카페에 다른 취업자 분들께도 연락을 주셔서 글 하나 남겨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날이 언제쯤이될지 모르겠다.

2008년 03월 05일

매니져 불꽃 드림